알고 싶어요

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편 집 부

 

질문: 자식을 키울 때, 자식의 잘못에 대해서 부모로서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답변: 자식의 작은 잘못에 대해서는 크게 꾸짖고, 큰 잘못에 대해서는 꾸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큰 잘못에 대해서, 자식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이미 반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눈뜬 사람도 걷다가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어린 네가 어떻게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네가 비록 이번에 실수를 했지만 다음부터는 매사에 조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자식은 그 일을 잊지 않고 명심해서 이후로는 실수하지 않는 훌륭한 삶을 부모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잘못에 대해서는 엄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크게 꾸짖어서 더 큰 잘못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절대 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알 수 있도록 꾸짖어야 합니다.

 큰 잘못에 대해서 크게 꾸짖는 것은 자식이 큰 병을 얻게 되거나 기(氣)가 꺾여서 낙오자나 그릇된 자가 되는 등의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자식을 키울 때는 정으로 키워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입장이 아니라 선생의 입장에서 키워야 합니다. 좋은 선생의 입장으로 자식을 가르칠 때 훌륭한 자식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정으로 모든 것을 대신 해결해 주는 온실 역할을 하면서 자식을 키운다면, 혼자 세상에 나갔을 때, 학벌이나 허우대는 그럴 듯하지만, 거짓을 말하고 인색하고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만들기가 쉽습니다.

 

 

질문: 학교에서 보낸 가정 통신문을 보았더니 자식에게 지식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지혜를 가르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지식은 무엇이며 지혜는 무엇입니까?

 

답변: 책이나 교육을 통해서 배운 것, 용어나 상식 등을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란 우리 앞의 모든 현상들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지식과 지혜는 매우 유사한 말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지혜는 진실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진실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책이나 기존의 교육을 통해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현실과 부딪쳐 보면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판단과 능력은 어떠한 문제라도 능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 활용되는 정확한 기술적인 지식은 지혜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들은 자신을 망치고 세상을 그르치는 데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이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지식은 지혜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을 가르치는 올바른 교육이 행해질 수 있다면 교육을 통해서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교 교육은 지혜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에 대한 교육의 부족으로 인하여, 있는 일이 충분히 설명되지도 못하고,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사실을 통해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최고의 가르침과 지혜는 사실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있는 일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질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입니까?

 

답변: 거짓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말에 빠져 있습니다. 신의 작용에 의해 죽은 자가 산 자를 속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은 사람들이 세상과 자신 속에 존재하는 문제의 진실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에는 거짓이 진실을 앞서고 있습니다.

 

 

질문: 깨달은 자와 일반 사람들의 시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답변: 깨달은 자는 어떤 일을 보려고 할 때, 있는 것을 가지고 추적합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생각을 가지고 추적을 합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와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결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됩니다. 같은 사물을 두고도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있는 것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질문: 왜 사람들에게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답변: 삶 때문입니다. 삶이 자신을 존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의식의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있는 것을 바로 보고, 있는 일이 어떻게 해서 있게 되는지의 문제를 알아보고, 그 문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결과를 만드는 지를 아는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은 눈을 뜨는 것입니다. 눈을 뜨게 되면 살기가 편해집니다. 단순해진 자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온갖 생각을 하면서 살 때와 생각이 없이 살 때의 차이입니다. 생각이 없으니까 실수를 적게 하고, 실수를 안 하니까 남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생각이나 상상은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온갖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단순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요?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열심히 듣고 보고 그리고 알려고 노력하다 보면, 먼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있는 일에 눈을 뜨게 됩니다. 있는 일이나 자기가 한 일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실수할 것을 뻔히 알게 되니까 실수를 안 하게 됩니다. 있는 일을 아니까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있는 일을 알지 못하는 자는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신 속에 있는 업의 작용에 의해서 자신을 움직이기 때문에 있는 일을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자는 있는 일을 보고, 그 일에 맞추어서 쉽게 살아갑니다.

 삶은 자신을 이어가는 길이며, 깨달음이란 자신의 좋은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질문: 자신 속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답변: 자기 자신에 의해서 자신이 태어나고 만들어집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 자신을 옥황상제라고 한다면 옥황상제의 근본과 바탕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자신은 항상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나무에 열매가 열린다면 그 열매의 근본은 나무에 있습니다. 그 나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과 성질은 열매 속에 그대로 축적됩니다. 그 열매를 심으면 그 속에 있던 그대로의 기능과 성질을 가진 나무로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나무가 성장하는 동안 바탕과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나무는 그러한 자신을 열매 속에 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콩을 땅에 심으면, 콩나무로 자라서 심었던 콩과 똑같은 콩을 열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콩들의 근본이 서로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누구나 자기 자신 속에서 자신을 나게 합니다.

실상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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